본문 바로가기
국어교육

시조의 이해 명칭 역사 종류

by India 2024. 10. 3.
반응형

시조(時調)의 이해 그 중에서도 명칭, 역사와 종류에 대해 알려드리겠습니다.

제1장 시조의 이해

시조(時調)는 한국 고유의 정형시이다. 시조 이전의 모든 시형(詩型)은 시조의 발생을 위한 준비이고, 시조 이래의 시형들은 시조에서 분파한 형식이라 할 만하다. 민족 생리에서 우러나오지 않은 시형들은 일시적으로 각광을 받았다 하더라도 곧 도태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시조만은 700~800년을 두고 민족의 얼과 정서를 담아 줄기차게 오늘에 이른 유일의 민족 문학이다.

 

1. 역사

 

시조 발생에 대하여는 학설이 구구하나, 그것은 신라 향가(鄕歌)에 접맥되어 싹틀 기미를 마련했고, 고려 중엽에는 고려 장가(長歌)가 분장(分章)되어 그 형식이 정제되었으며, 고려 말기는 3장 12구체의 정형시로 정형되었으리라 믿어진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작품으로는 고구려의 을파소(乙巴素), 백제의 성충(成忠), 고려 초기의 최충(崔忠) 등의 것이 있고, 고려 말기의 우탁(禹倬)․이조년(李兆年), 이방원(芳遠:太宗)의 《하여가(何如歌)》, 정몽주(鄭夢周)의 《단심가(丹心歌)》 등 10여 수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로 접어들면서 날로 계승․발전되어 송강(松江) 정철(鄭澈),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노계(蘆溪) 박인로(朴仁老) 등의 대가를 배출하였다.

 

조선 중기에는 황진이(黃眞伊)를 배출하여 시조의 난숙, 절정기를 이루었다. 양반들에 의해 지어진 종래의 단형(短型)시조가 임진왜란을 계기로 드러나기 시작한 산문 정신에 힘입어 양반의 생활권을 넘어 평민 계급으로 파급되면서 그 형식은 평시조의 소재이던 자연에서 눈을 돌려 실생활에서 소재를 구해 장형(長型)로 분파되었다. 조선 중기를 넘어서 시조가 양적으로는 늘어났으나 질적인 저조를 면하지 못하였다. 영정조(英正祖)시대에는 구전되어 오던 시조의 일실(逸失)을 염려하여 편찬 사업이 성행하였다.

 

1728년(영조 4) 김천택(金天澤)의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효시로, 63년(영조 39)에는 김수장(金壽長)의 《해동가요(海東歌謠)》, 1876년(고종 13)에 박효관(朴孝寬)과 안민영(安玟英)의 《가곡원류(歌曲源流)》, 그 밖에 《고금가곡(古今歌曲)》, 《동가선(東歌選)》, 《남훈태평가(南薰太平歌)》, 《객악보(客樂譜)》 등의 시조집들이 쏟아져 나왔음은 시조의 보존을 위한 쾌사였다. 조선 후기까지 시조 편수는 2,000여 수에 달하는 방대한 것으로 거기에 담긴 사상과 정서는 한국의 역사를 시간과 공간으로 그대로 꿰뚫어 모은 정신적 유산이라 할 수 있다. 나. 현대 시조〉 신구문학(新舊文學)의 분수령인 갑오개혁을 맞아 시조는 고시조의 탈을 벗고 서서히 새 모습으로 이행하기 시작하였다. 그 향도역(嚮導役)을 맡은 이가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이다.

 

 

1926년에는 프롤레타리아 문학에 대립하여 국민 문학론이 대두되면서 시조 부흥 운동이 전개되었고, 최초의 현대 시조집인 육당의 《백팔번뇌(百八煩惱)》가 그 해에 발간되었으며, 최남선,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위당(爲堂) 정인보(鄭寅普), 자산(自山) 안확(安廓) 등의 작품은 아직도 옛스런 면이 있기는 하나 고시조와 현대시조의 교량적 구실을 했음은 분명하다. 그리고 갑오개혁 이후의 시조를 모조리 현대 시조로 다루기보다는 이상 열거된 이들의 시조를 신시조(新時調)로 다루고 그 이후부터의 시조, 곧 가람(嘉藍) 이병기(李秉岐), 노산(鷺山) 이은상(李殷相) 이후의 작품을 현대 시조로 보는 것이 마땅하다. 시조를 본격적으로 현대화시키는 데 이바지한 사람은 이병기․이은상 등이며, 31년에는 《노산시조집》이, 47년에 《가람시조집》, 48년에 《담원(園) 시조집》(정인보 저) 등이 발간되어 허술한 시조 시단에 활기를 불어 넣었다.

 

주요한(朱耀翰)․양주동(梁柱東)을 비롯하여 기타 많은 문사들이 시조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일석(一石) 이희승(李熙昇)은 계속 시조다. 1938~39년에 《문장(文章)》 《동아일보》 등을 통해 등단한 이호우(李鎬雨)․김상옥(金相沃) 등에 의해 시조는 심화되기 시작했으며, 특히 이호우는 현대 시조에서 내면 세계를 다루는 데 성공하여 현대 시조의 격을 높인 공이 크다.

 

조종현(趙宗玄)․김오남(金午男) 등의 활약에 이어 이영도(李永道)․정훈(丁薰) 등은 제나름의 특유한 영토를 마련하였다. 월하(月河) 이태극(李泰極)은 시조 전문지인 《시조문학》(1960년 창간)을 34집까지 이끌어온 공이 크다. 시조 중흥에 크게 기여한 정부 주최의 󰡐개천 경축 백일장(1957년부터 3년간)에서는 정소파(鄭韶坡)․장순하(張諄河)․유성규(柳聖圭) 등이 배출되었고, 60년대 초에 신춘 문예를 통하여 정완영(鄭梡永)․이우종(李祐鍾)․박경용(朴敬用)․이근배(李根培) 등에 뒤이은 역량 있는 작가들이 속출하여 오늘의 시조 신단은 현역작가 수만도 약 200여 명에 달한다.

 

58년에는 《현대시조선총(現代時調選叢)》이 나왔으며, 64년에는 한국시조작가협회가 결성되었고 그 뒤 한국문인협회에는 시조분과가 마련되었다. 시조전문지로는 《시조문학》과 《현대시조》가 있으며, 시조시인에게만 주어지는 문학상으로는 노산 문학상․가람 문학상․정운 문학상 등이 있다. 이은상은 양장(兩章) 시조를 시도한 바 있으며, 단장(單章) 시조․동시조(童時調) 등을 시도한 이도 있다. 최근 신예작가들의 발랄․참신한 작품이 현대 시조의 앞날을 밝게 해준다.

2. 명칭

본래는 시조를 단가(短歌)라 불러, 장가(長歌 : 고려 가요․경기체가 등)에 비해 짧은 형식의 노래라는 뜻으로 호칭되던 것이 그 후 단가에 곡조를 맞추어 부르게 됨으로써, 이런 곡조를 영조(英祖) 때 가객(歌客) 이세춘(李世春)이 ‘시조(時調)’라 하였으나 그 뒤 가사(歌詞)까지를 합쳐 시조라 부르게 되었고, 이 후 곡조는 빼놓고 단순히 작품 내용만을 시조라 하기에 이르렀다. 시조란 시절의 노래, 즉 시절가조(時節歌調)의 약칭으로서 시절가(時節歌)․신조(新調)․시조(詩調)라고도 하였다. 그러나 근래에는 그 호칭이 시조 하나로 굳어져 가는 경향이 있고, 또한 요즈음에는 시조라 하면 가락이나 곡조를 합친 의미로는 전혀 쓰이지 않고 오직 작품내용의 호칭으로만 쓰이고 있다. 한편 영조 이전에는 곡명이 아닌 작품내용의 호칭으로서 단가 외에 신번(新飜)․영언(永言)․장단가(長短歌)․시절단가(時節短歌)․가요(歌謠)․가곡(歌曲)․악장(樂章)․신성(新聲) 등의 명칭으로도 사용되었으나 역시 단가가 그 호칭의 대표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3. 종류

① 평시조(平時調) : 초․중․종장이 각 15자 내외, 총 45자 내외의 단형 시조(短型時調)이다.

② 엇시조(時調):평시조보다 초․중장 가운데 어느 한 장이 자수(字數)가 무제한으로 길어지고 종장에는 그다지 변화가 없는 중형시조(中型時調)를 말한다.

③ 사설 시조(辭說時調) : 평시조보다 초․중장이 제한 없이 길고 종장도 어느 정도 길어진 시조. 사슬 시조라고도 하는 장형 시조(長型時調)이다.

④ 연시조(連時調) : 한 제목 밑에 여러 수의 평시조를 엮어나간 시조. 맹사성(孟思誠)의 《강호사시가(江湖四時歌)》, 이황(李滉)의 《도산십이곡(陶山十二曲)》 등이 이에 속한다.

⑤ 양장 시조(兩章時調):초장과 종장만으로 된 시조. 이은상이 시도했으나 요즈음에는 이런 시형으로 짓는 이는 거의 없다. ⑥ 단장 시조(單章時調) : 평시조를 더욱 압축하여 초․중장을 제쳐놓고 종장만으로 시조의 맛을 내게 하려는 시조의 변형이다. 이는 단순한 시도에 지나지 않는다.

⑦ 동시조(童時調) : 어린이의 생각이나 느낌, 또는 기호에 맞는 내용으로 된 시조. 근래에 와서 시도되고 있으며 이는 날로 쓰이는 율이 높아가고 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