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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영화 바비 후기 리뷰 페미니즘의 현주소를 확인하다

by India 2023. 8.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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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바비랜드'를 살아가던 '바비'는 현실 세계와 이어진 포털의 균열을 포착하게 되면서, 이상한 증세에 시달리게 된다. 항상 긍정적이고 당차기만 했던 그녀가 '죽음'과 같은 우울한 단어를 떠올리며 기분이 쳐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 이상한 증세를 해결하기 위해 자신과 이어진 '현실 세계'의 사람을 찾아 켄과 함께 포털을 넘어가게 된 바비. 그곳에서 바비는 항상 완벽해야만 하는, 그렇지만 본인의 권리와 삶에 대해선 쉽게 주장하지도, 인정받지도 못하는 '현실의' 여성들을 만나며 성장하게 된다.

 

개인적인 감상, 내가 생각하는 페미니즘 운동

 

개인적으론 '바비랜드'의 '바비'가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여성들의 위치'가 아닐까, 생각했는데 이런저런 글을 읽다보니 '바비랜드'에서 '켄'의 위치가 현실 세계에서의 여성들의 위치이자, 페미니즘의 현실이라는 해석을 보았다. 그 해석을 읽고 아차, 싶었다. '켄'은 '바비랜드'에서 자신의 위치와 능력을 인정받지 못한다. 그녀는 주인공으로 사는 '바비'의 삶의 조연에 불과하며, '바비'의 사랑과 관심 없이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로 치부된다. 그러다 포털을 넘어와 현실 세계에서 '가부장제'를 알게 되면서, '바비랜드'를 전복시키고, 자신이 바비 위에 군림하고자 하지만 그 마저도 결국 수포로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영화 속 '바비'에는 이런 저런 현실의 단면들이 중첩되어 있는 거 같다. 켄이 현실의 여성이기도 하고, 바비가 현실의 여성이기도 한, 주인공들의 모습에서 여러 현실 속 인물들을 만나볼 수 있는, 그런 중첩성이 영화에 있는 거 같다. 이분법적으로 바비가 현실세계의 남성의 위치고, 켄이 여성의 위치라고 단언하기도 힘들다고 본다. 그 둘의 모습 어딘가쯤, 현실의 남성들이 있고 현실의 여성들이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다만 내가 외쳤던 페미니즘이라는 게 얼마나 환상 속 '바비랜드'에 갇혀 있었는 지는 좀 뼈아프게 깨달았다. 방구석 여포처럼, 현실적인 힘과 능력 없이 약자임을 내세우며 나를 알아달라, 인정해달라 떼쓰는 그런 페미니즘은 이제 나도 지양하고 싶다. 행동하고, 삶을 살면서 나의 주체성과 독립성을 가지고, 그로 인해 '삶으로 증명하는 페미니즘'을 실천하고 싶어졌다. 이 지점에서 영화 바비는 나에게 큰 교훈을 주었던 거 같다.

 

 

영화 '바비', 인도, 한국에서만 흥행이 저조하다고?

 

영화를 보는 내내 통쾌하고 공감이 갔다. 보고 나온 뒤 유쾌했던 나의 기분은 영화 해석을 읽고 싹 가셨다. 기쁨의 감정은 곧 씁쓸함으로 바뀌었다. 영화 속 바비가 현실세계로 왔을 때의 충격이 이랬을까. '바비'가 한국에서만 흥행이 저조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씁쓸함은 곧 체념의 감정으로 바뀌었다. (미국에서도 1위이고, 중국에서도 열풍인 '바비'가 대체 왜 한국에서만 흥행이 저조하단 말인가? 한국 여자 애들이 갖고 노는 장난감이 '바비'가 아니라 '미미'나 '쥬쥬'라서 그렇다는데, 그럼 중국 흥행 열풍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고백하건데, 대학 입학 전 나는 한국이 성적으로 불평등한 국가라 생각해본 적 없다. 그 또래 아이들이 그렇듯, 젠더 불평등 논쟁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그렇다고 청소년 시절 내가 한국에서 아무런 성차별도 겪지 않았는가?에 대해선 절대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자연스럽게, 은근하게 이루어지던 성추행과 성희롱에서 나도 자유롭지는 않았으니까. '여자'라는 이유로 겪어야 했던 말로 설명하긴 어려운 묘하고 답답한 사건들이 내 일상에도 종종 끼어들었었으니까. 그땐 그게 문제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숨쉬듯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게 겪었던 일들이어서. (이런 인식 자체가 사실 엄청나게 무서운 거 아닌가. 폭력이 폭력인 지도, 차별이 차별인 지도 모르게 자랐으니.)

 

대학에 입학하고 처음으로 여성학을 접했을 때, 내가 느꼈던 감정은 분노였다. 무엇에 분노했는 지는 사실 지금도 설명할 수 없다. 논리만 봤을 때 여성학은 은연 중 내가 가려웠던 부분을 잘 긁어주었고, 현실 세계의 단편을 잘 보여주기도 했다. 무의식적으로 쉬쉬했던 것들, 내가 '언어'로 표현하지 못했던 '여자애'로 살아오면서 겪었던 불편들. 그것들을 알게 되면서 느끼는 분노와, 카타르시스.

 

너무 예쁜 바비 메가박스 오리지널 티켓

 

그렇게 대학을 졸업 한 후, 나는 여성학 책에만 있는 거라 믿었던 온갖 부조리를 사회에서 목격했다. 물론 내가 있었던 사회 집단이 구려서, 시대착오적이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대학 졸업 후 내가 부딪힌 사회는 상상 그 이상으로 성차별적이었다. 고객사와 식사하는 자리에선 여성 직원들이 옆자리에 앉아야 한다는 암묵적인 룰, 능력이나 노동의 양과는 상관 없이 성별과 정치질로 결정되는 승진 시스템 등. 더 적나라게 말하자면, 내가 겪은 건 다른 친구들이 겪었던 것에 비해선 새발의 피로 치부될 수 있는 정도다.

 

여성학에서 말하는 젠더 논쟁이 책 속에만 있길 바랬다. 그러나 사회는, 책 속에 서술된 딱 그만큼 부조리했다. 물론 예전보단 세상이 많이 변한 것도 있지만 여전히 은연 중에 지속되고 있는 성차별적인 요소들을 쉽게 무시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답답했던 건, 그 부조리에 대해 말할 수 있는 대화의 '장'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그 답답함을 바비가 해소시켜주었다. 나름 영화를 즐기는 편인데도, 바비만큼 적나라하게 그리고 통쾌하게 페미니즘을 말하는 영화는 지금껏 없었던 거 같다. 동시에 내가 외쳤던 페미니즘은 어쩜 '바비랜드'에서만 통한, 허울 뿐인 말이였는 지도 모른다. '인생은 실전'이라는 말처럼, 현실세계에 바닥부터 부조리함과 부딪혀야 했던 켄처럼, '현실세계'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은 이제 막 시작되었는 지 모른다. 나는 딱히 영향력 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때 페미니즘을 열렬히 공부했고 지지했던 사람으로서, '행동'으로 그리고 '삶'으로 페미니즘을 실천해보고 싶다. 그건 나에게 자부심을 주는 일이니까. 그러나 나의 이런 개인적인 실천 외에도, 사회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여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도 꼭 만들어지기를 바란다. 그 두가지 바퀴가 맞물려 가면서, 세상은 점차 변하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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