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최승자 시에 나타난 부정을 긍정하는 긍정
이처럼 최승자 시인의 시에 나타난 전반적인 모습은 허무와 죽음, 고통과 파괴와 같은 부정성이 근본적으로 깔려있다. 서정적이고 낭만적이기 보다 이질적이고 파괴적이며, 조화롭고 이상적이라기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이러한 시의 성격에서 '비극성'이 두드러진다. 삶의 본질이 허무이며, 일반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치로 이야기 되어지는 '사랑' 역시 그 본질을 들여다 보면 고통과 슬픔으로 얼룩져 있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부정성에 머물고, 그 부정성에 침전하기 보다는 그 부정성 자체를 긍정한다. 이러한 아이러니하고 역설적인 시각에서 비극적 '미학'이 구현된다. 진정한 긍정은 부정을 긍정하는 긍정인 바, 시인은 통속적으로 부정적으로 여겨지는 가치에 미학의 숨결을 부여하면서 삶이 가지는 모순성, 복합성, 다채로움 그 자체를 아름답게 표현한다.
물 흐르는 소리, 졸졸 자알 잘,
아득하게 슬픈 기쁜 이쁜 물소리
되흘러 들어오누나,
내 혈관 속까지.
「脈」 부분
이 시에서 화자가 느끼는 '고통'은 화자 스스로 자신을 비우면서 그 형상이 점점 희미해져 간다. 그 고통은 '나'의 것인지 타인의 것인지, 과연 진짜 '고통'이기는 한 것인지도 애매하다. 그러다 그 고통은 소리가 되고, 기쁘고 이쁜 물소리가 되어 다시 화자의 혈관으로 들어온다. 이처럼 시 안에서는 나의 고통과 타인의 고통, 고통과 즐거움의 이분법이 해체되고 아픔과 비극으로 표상되는 고통이 '기쁜, 이쁜' 물소리가 되어버린다. 이는 모순되고 대립 되는 이분법이 해체되고, 그 모순과 대립이 함께 공존하는 모순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화자가 생각하는 비극과 고통이 단순한 아픔에 토로에서만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미학을 구성하며 시적 정서를 그려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하지,
살아 있다는 건,
참 아슬아슬하게 아름다운 일이란다.
빈 벌판에서 차갑고도 따스한 비를 맞고 있는 것 같지.
(중략)
마침내 네가 이르게 될 모든 끝의
시작을!
「20년 후에, 英에게」 부분
이 시에서는 삶에 대한 화자의 인식이 뚜렷하게 드러난다. 그리고 그 인식은 항상 역설적이고 아이러니한 모순을 획득하고 있다. '차갑고도 따스한 비'와 '물려 죽지 않기 위해 하지만 끝내 물려 죽으면서', '모든 끝의 시작'은 진술 자체에 모순이 나타나는 표층적 역설이다. '차갑고도 따스한 비'는 살아 있으면서 겪을 수 있는 상황들을 비유한다. 상황들은 각각 차갑고 비극적이지만 동시에 그 이면에 따듯하고 아름다운 가치를 지니기도 한다. '물려 죽지 않기 위해, 끝내 물려 죽으면서'에서는 죽음으로 인도하는 세월 앞에서 죽음을 거부하려 하지만 본질적으로 순응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나타낸다. '모든 끝의 시작'은 끝이라고 생각하는 모든 순간이 다음으로 넘어가는 시작에 불과하다는 의미로 읽을 수 있다. 또는 불교의 관점에서 윤회론적 시각을 드러낸다고도 볼 수 있다. 이처럼 시인은 삶에서 다채롭게 나타나는 모순을 삶 그 자체로 긍정하고 이를 표층적 역설이라는 언어적 기법을 통해 드러낸다.
이를 통해 아이러니와 역설이 '아슬아슬하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미학을 드러내는 중요 요소임을 강조한다. 이런 시인의 세계관은 시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아이러니적 이미지, 그로테스크, 비극성, 파괴성 등을 긍정하는 태도와 연결지어 생각할 수 있다. 시인이 생각하는 삶이란 결코 가지런한 질서와 조화와 낭만성만이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고통을 감수해야하는 전쟁터이며, 낭만과 조화보다는 파괴와 부조화가 범람하고 있는 현실이다. 이에 시인은 낭만성과 조화로움 뒤에 자신의 고통을 회피시키지 않으며 또 고통에만 침잠하는 것에 그치지도 않는다. 시인은 한 발 더 나아가 허무와 고통을 삶의 본질로 직면하고 이를 아름다움으로 형상화시키는 시인의 천명을 담담히 해내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2) 나가며 - 최승자 시에 나타난 존재론적 미학
삶에서 부유하는 부정성들을 외면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하나의 시적 요소로 미학을 부여하는 시인의 작업을 통해 독자는 개인의 고통과 아픔에 대한 공감과 자신 안의 부정성을 직면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다. 이는 곧 개인 안에 존재하는 다채로움을 긍정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 그 자체에 대한 긍정이다. 회피가 아닌 직면에서 비롯된 긍정은 '탄생'에서 비롯된 본질적인 허무와 슬픔을 바라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러한 성찰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스스로와 세상 그 자체를 긍정하고, 자신이 내던져진 삶을 필연적으로 기뻐하는 존재론적 미학의 가능성을 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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