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시인소개
최승자 시인은 1979년 '이 시대의 사랑'으로 등단했다. 도발적인 감각과 자유분방한 언어로 기존에 여성성을 탈피했다는 평가를 받으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즐거운 일기', '기억의 집', '내 무덤, 푸르고' '연인들'과 같은 6개의 시집을 발표했으며 2010년 '쓸쓸해서 머나먼'으로 대산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그의 시는 기존 여류시인의 전통적인 서정적 문법을 파기하면서 새로운 시도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새로운 시각과 시적 방법론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적 지평을 확대한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최승자라는 이름은 한 개별자의 이름을 넘어서 '1990년대 시인의 보통명사'라 명명될 만큼 1980년대 문단에 끼친 영향력은 상당했다.
최승자 시인의 시는 아이러니가 지니는 객관적 거리와 복잡성을 통해 현실이 지니는 모순과 이중성을 효과적으로 드러낸다. 동시에 그로테스크한 기법으로 현실의 추함을 미학으로 전환시켜 삶의 불협화음을 아름답게 구현하며 긍정한다. 이 글은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라는 문학적 기법을 토대로 시를 분석하여 최승자 시인의 시가 지니고 있는 비극적 미학에 대해 논의하고자 한다.
최승자 작품세계의 특징 (1) - 존재론적 허무에 대한 성찰
아이러니는 유사성의 지속을 부정한다. 이 유사성의 부정은 자아와 세계의 차이성에 대한 집중이다. 따라서 아이러니는 현실과의 객관적 거리를 전제하며 냉소적이고 비판적이다. 이때 아이러니는 자아와 세계 사이의 외적 거리는 물론 분열된 자아 속에 내적 거리도 드러낸다. 이러한 아이러니는 본질적으로 현실에 대한 자아의 변장성이며, 이중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띈다. 따라서 아이러니는 인생의 폭넓은 인식이자 삶에 대한 여러 가지 시각, 즉 모든 세계관의 수용이다. 시인의 시에서는 이러한 아이러니적 정신이 적극적으로 구현되고 있다. 세계와의 거리를 통해 삶의 본질을 직시하고, 삶의 근간에 놓여있는 '아이러니적' 질서를 목격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은 세계와의 조화로운 합일이 아닌 객관적 거리를 두고 분리하면서 역설적으로 삶의 본질에 접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허무의 기계를 돌리기 시작하리라.
몇 천 년 전부터 다만 헛되이
헛되고 헛됨을 다 이루었다고 말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 벨이 울리고」 부분
이 시 전반에 깔린 화자의 근원적 물음은 인간의 존재적 '무'다. 즉 삶을 시작하자마자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무'를 향해 달려가야만 하는 인간의 아이러니한 당위성에 직면한 것이다. '끊임없이 나를 찾는 전화벨'은 화자가 삶을 살아가면서 겪는 무수한 일의 비유로 이해될 수 있다. 자신을 찾는 전화 벨소리에 응답하거나, 거부하면서 그 선을 따라가다 보면 인간은 입을 벌리고 있는 '죽음'이라는 동굴을 마주한다. 그 '죽음'에 대한 화자의 태도는 적극적이다. '결정적으로 응답'하고 '폭발'하는 화자의 모습은 인간의 근위적 당위적 죽음을 적극적으로 받아드리는 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삼십년 전'으로 표현되는 개인적인 삶의 측면이 '몇 천 년'이라는 인류의 삶의 측면으로 확장되며 화자는 인간의 본질적이고 보편적인 문제인 죽음과의 대면을 진행하며 삶을 '헛되고 헛됨을 이루는' 과정으로 본다.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한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
「일찍이 나는」 부분
이 시 역시 인간 존재의 근원적 허무함을 드러낸다. '나를 안다 말하지 말라'고 진술하는 화자의 모습에서 존재를 규정할 수 없는 삶의 근원적 허무함이 폭로된다. 끊임없이 세상에 대해 정의를 내리고 의미를 부여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기 때문에 본질적으로 허무하다. 그러한 허무함에서 화자는 스스로를 '루머'로 규정한다.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하기 때문에 무상하고 허무한 '루머'처럼 인간사에 모든 가치와 의미들은 고정될 수 없다는 의미에서 '니힐'만을 본질적 가치로 지닌다. 이는 인간의 죽음의 확실성. 우주적 기원과 목적이 지니는 본질적 아이러니인 '우주적 아이러니'가 나타난다고 이해할 수 있다. 분명히 근본적이고 해결할 수 없는 모순 속에 던져진 인간 존재에 대한 통찰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이 바라보는 삶의 모습은 궁극적으로 허무하다. 이러한 허무함은 역설적으로 삶에 곳곳에 깔려있는 거짓의식과 욕망을 들춰낸다. 이는 아이러니라는 객관적 정신이 획득하는 '비판성'을 보여준다.
여의도 허공 가장 깊숙한 곳에선
신의 형상을 한 거대한 검은 아가리가
이 세계의 남은 뼈를 아득아득 씹고 있다.
「여의도 광시곡」 부분
위 시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군상은 본질적인 허무를 적극적으로 대면하기 보다는 문명의 진보와 함께 맞물려 거짓 욕망을 쫓아가는 모습을 보인다. 이러한 욕망의 집약적 장소인 여의도를 '거룩한 천상'으로 표현하는 것은 '언어적 아이러니' 기법으로, 표면적 진술과 이면적 진술 사이에 차이를 드러내며 '여의도'가 지니는 욕망의 허구성을 효과적으로 폭로한다. 또한 원초적인 욕망을 억압하고 인간의 본질적 허무를 대면하지 않은 채, 거짓된 세계로 회피해버린 일개미 같은 인간의 모습을 보며 시인은 '기념비'를 세운다고 비꼬고 있다. 이러한 '언어적 아이러니' 기법을 통해 문명 비판적인 거리의 정신을 획득하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은 아이러니적 기법을 통해 인간은 본질적으로 죽음을 피할 수 없으며, 모든 가치는 변하기 때문에 허무할 수 밖에 없다는 니힐리즘적인 '우주론적 아이러니'를 제시한다. 동시에 사태에 대한 깊은 고찰 없이 거짓된 가치를 기계적으로 쫓고 있는 현대인들의 거짓 욕망을 '언어적 아이러니'를 통해 폭로하며 문명비판적인 시선을 드러내고 있다. 이처럼 존재론적인 물음과 현 사태를 반영하고 바라보는 현실적인 시각은 형이상과 형이학을 나누는 이분법을 벗어나 존재의 근본적 물음과 현실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아이러니' 기법의 효과를 통해 증명한다.
다음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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