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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최승자 시인의 작품 세계에 나타난 비극의 미학 (2) 낭만적 사랑에 대한 반기

by India 2021. 10.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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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로테스크 기법이란?

 

그로테스크는 독자를 낯설게 하고 소외시키며 현시를 왜곡하고 과장하여 전한다. 현실과의 과장된 괴리는 곧 현실을 참되게 인식하는 토대를 제공한다. 소외, 왜곡, 과장과 같은 특징은 세계를 낯설게 하고 전통적이고 기존적인 가치들을 흔든다. 이러한 그로테스크의 성격에서 문명비판성, 신체성, 부조화 등의 특징이 발현된다.

 

2) 최승자 시에 나타난 그로테스크 기법

 

최승자 시인의 시에서는 '사랑'의 이미지들이 기존에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모습이 삭제된 채 고통스럽고 파괴적인 모습으로 나타난다. 이는 '사랑'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보다는 보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맥락에서 사랑이 가지는 여러가지 모습을 드러내면서 더 현실적인 사랑의 모습을 드러낸다.

 

내 몸에서 육즙이 뚝뚝 떨어지고

그들은 멀리에서 입술을 쓱 닦고

(중략)

이 지상의 누더기인 내 그림자가

보이지 않아 아름다워라고 말한다.

 

「S를 위하여」 부분

 

위 시에서 '애인'은 '낯선 사내'와 함께 나의 육체를 씹고, 그러한 나의 육체에서는 육즙이 뚝뚝 떨어진다. 쓰레기통에 '처박'힌 화자는 '밤은 아름다워'라고 부조화적인 발언을 한다. 이처럼 시는 '애인'으로 표상되는 '낭만적인 사랑'의 허상을 폭로한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관계가 아니라 씹히고 쓰레기통의 처박는 고통스럽고 가학적인 사랑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시인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은 기존의 서정시에서 나타나는 아름답고 조화로운 모습이 아닌 부조화와 고통을 기반으로 하는 가학적 행위의 모습에 더 가까운 것이다.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위해

살아,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하여 어느 날, 사랑이여」 부분

 

여기서 화자는 비유적이고 이상적인 사랑을 거부한다. 화자에게 있어서 사랑이라는 것은 관념으로 떠다니는 이상적이고 서정적인 모습이 아니라 '주먹의 바스라짐'과 같이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사태를 드러낸다. 이처럼 최승자 시인의 시 세계에서 나타나는 '사랑'이라는 것은 낭만성과 조화로움을 거부한 채, 사랑의 고통과 증오, 파괴에 대해 드러낸다. 이는 추상적이고 이상화된 관념인 '사랑'을 육체적이고 구체적으로 끌어 내리고 기존에 사랑의 아름다움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꺾이기 위한, 파멸을 위한 사랑이라는 부조화적인 관점을 드러낸다. 이러한 시의 모습에서는 추의 미학이 드러나며, 사랑이라는 낭만성과 구체적인 현실 사이에서 드러나는 부조화와 사랑의 고통을 신체적인 이미지로 나타낸다는 점에서 그로테스크의 특징을 표하고 있다.

 

최승자 시인의 시는 전반적으로 아이러니와 그로테스크한 특징을 가진다. 삶에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를 묻고 또 물은 시인은 그 근원에 '허무'가 존재함을 알아차린다. 인간의 존재는 탄생과 함께 죽음으로 향할수밖에 없으며 그렇기에 삶에 존재하는 의미와 가치들은 본질적인 규정성을 상실한 채 '무'만을 본질로 가진다. 그러나 시인은 이러한 허무를 끌어안고 긍정한다. 죽음과 허무를 시적인 표현을 통해 아름다움으로 전환시키며, 허무를 직면하지 않고 회피한 채 거짓된 욕망을 좇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비판한다. 더불어 시인은 현실이 낭만성과 조화만으로 존재하지 않으며 삶에 곳곳에 존재하는 고통과 부정성에도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는 낭만성과 조화로움 뒤에 존재하는 삶의 다채로운 본질을 복원하는 작업이며, 삶 속에 대립과 모순을 긍정하는 작업이다. 따라서 시인에게 '사랑'은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적이며, 고통과 파괴도 공존하는 감정이다. 이처럼 시인의 시에서 나타나는 현실은 아름답기보다 추하며, 조화롭기 보다 부조화를 나타낸다. 그리고 그렇기에 오히려 더 진정한 현실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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